우리가 사는 곳은 작은 계곡이 있어요. 계곡물로 동네 사람들 논 농사를 짓는답니다. 올해는 유난히 비가 안와서 계곡물이 말랐답니다.
지난 장마로 계곡에 물이 많이 불었어요. 평소에는 물이 말라 바닥이 보일 정도였는데 폭우가 쏟아지고 장마가 길어지면서 계곡의 물이 속 시원하게 쏟아져 내렸습니다. 계곡 주변에 있던 풀들이 많이 계곡물을 이기지 못하고 떠내려 갔어요. 그래서 남은 풀을 남편이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어요. 시골 살면 할 일이 많아 손이 놀 시간이 없어요. 계곡 풀까지 정리하는 남편은 재미있다고 합니다. 나는 그냥 풀들이 자라는대로 놔두는게 좋은데 남편은 시골에서도 정리된 모습을 좋아하네요.
계곡 주변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공생하며 살고 있었어요. 미치광이풀, 초롱꽃, 노루오줌꽃, 쑥부쟁이, 참당귀, 칡등. 그런데 이번 비에 많이 쓸려 갔어요. 잎은 쓸려 갔어도 뿌리는 남아 내년에도 예쁜 꽃과 예쁜 줄기와 잎 보여주리라 믿어요. 산골생활을 해보니 아무 것도 없는 땅에서 식물들이 세상을 향해 삐죽 고개 내밀고 살아가는 모습이 신기했어요. 어느 날 가보면 얼마전까지 없던 식물이 나보란 듯이 자라고 있어요. 마치 오래전부터 이 계곡근처에 살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지요. 그럴 때면 땅의 신비를 느낌니다. 땅 속에는 얼마나 많은 씨앗들이 잠들어 있길래 해마다 봄이면 이렇게 많은 식물들이 앞다투어 나오는지 말이지요.
지난 초여름의 일이었어요. 계곡 옆을 지나는데 예쁜꽃이 피어 있었어요. 자세히 보니 초롱꽃이었어요.이렇게 예쁜꽃이 외진 곳에서 외로이 피어 있었어요. 너무 예뻐서 두 손으로 꼭 감싸주었어요. 책에서만 보던 초롱꽃을 직접 보니까 완전 신기했어요. 꽃모양이 청사초롱처럼 생겼다고 해서 초롱꽃이라 불린답니다. 특이하게 꽃이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꽃을 하늘을 향하게 하고 안을 들여다보니 점박이가 박혀 있었습니다. 하얀등 같은 예쁜 꽃이었어요. 우리 식탁에서 밥을 먹다가 식탁등을 보니 글쎄 초롱꽃 모양이었어요. 누군가 초롱꽃을 보고 등을 디자인했나봅니다. 자연은 최고의 디자이너라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우리는 매일 초롱꽃을 밝히고 밥을 먹고 있는 거지요.
한 번은 지나는데 분홍색꽃이 보이는거에요. 가까이 가서 보니 털이개모양의 복슬복슬한 꽃이었어요. 검색해보니 ‘노루오줌꽃’이네요. 뿌리에서 노루오줌냄새가 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꽃은 매우 아름다운데 이름이 안 예뻐서 노루오줌꽃은 좀 억울해서 개명신청이라도 할 것 같아요. 꽃이름이 안 예쁘면 어떤가요?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운 걸요. 털이개 디자인도 노루오줌꽃모양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가인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계곡은 다양한 식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요. 한 가지 식물이 점령하지 않고 서로 공생하며 산답니다. 봄에는 키작은 식물들이 계곡을 예쁘게 하고요. 여름이면 키 큰 식물들이 나와서 여름을 진초록으로 물들입니다. 요즘은 칡덩쿨이 장관이고요. 장녹도 마치 나무처럼 자라고 있고 오동나무도 커다란 잎을 자랑하며 쑥쑥 크고 있어요.
이번 장마로 계곡이 폭포가 되었지만 내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또 그 자리에 식물들이 나와서 자랄거에요. 계곡물에 떠내려온 어떤 식물이 숨어 있다가 보란 듯이 피어나겠지요. 계곡물이 음료수처럼 보는 것도 시원하고 발 담그고 놀기도 참 좋았습니다. 산골 생활에서 누릴 수 있는 특혜입니다.
우리네 사는 인생도 계곡물처럼 시원하게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살다보면 그런날도 오겠지요. 마음의 근심걱정 계곡물에 실어보내고 물소리 음악소리 삼아 마음 편한 하루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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